독립시선일기

집이라는 울타리, 집 바깥이라는 어떤 벽

7그램 2018. 10. 11. 15:12





죄송한데.. 제가 집에 가봐야될 거 같아요.
날씨도 참 맑았던 10월 3일. 추석동안 이사를 모두 끝낸 뒤 방에 짐들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물론 그날 집정리를 했어야했으나, 오전에 잠깐 등산모임정도는 괜찮겠지 싶어 집을 나섰다. 그리고 11시,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아빠가 내 짐들을 버릴 요량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북악산에 입장신청을 하고 계단을 올랐을 무렵, 아빠와 전화가 닿지 않고 언니의 다급한 연락이 오니 나는 얼굴이 질려서 모임친구들에게 말했다.


"아빠가 제 물건들을 버리고 있어서 집에 가야될 거 같아요"


아무도 이해못하지 않았을까. 아니 세상에, 무슨 그런 이유로 집에 간단 말이야. 하며.. 나는 진지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경복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집까지는 차분한 상태로 왔었고, 그냥 화도 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세상 다 상처받은 사람인양 굴기로 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사정이 달랐다.


신발장 앞까지 가득 던져진 나의 인형들과 짐들, 그리고 거짓말처럼 벽에 붙은 폼벽지.. 내 방이 도려내져 있었다.

본인 방에 있는 걸 끄집어 왔단 말이에요?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일단 먼저 화가 났다. 잔뜩 흐트러진 내 방을 보면서 계속 화가 났다. 아빠에 의해서 아직 도려내지지 않은 부분들을 내 손으로 집어던졌다. 이럴거면 나도 버려주라, 하면서.
화이트보드도 다 부수어버렸고 소리를 지르며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그렇게해서라도 나의 이 감정을 풀어내야겠다 싶었다. 아빠는 마치 음소거를 켜놓은 TV를 보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화라도 낼줄 알았는데 또 그것도 아니었다.
내 방을 도려낼 때 아빠의 감정은 내가 울 때의 감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아빠와 나는 기분이 나쁠 정도로 닮았다. 아빠는 나를 통해서 아빠의 모습을 봤을까. 아니면 어떤 것이었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내 방에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가만히 있던 아빠의 마음이. 암튼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인간류인 우리 언니는 이 괴랄한 사람들 사이에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날 부수어버린 화이트보드는 꽤 오랜 시간 내 방문앞에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