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동이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2021. 9. 20. 04:49카테고리 없음

이번만큼은 생각했다.
때를 놓치고 후회하지말자고.
그래서 다녀왔다. 병원에


#고데기 끄러 집에 가는 마흔살이 될 수는 없어

때는 2008년. 어느 고등학교의 교무실 안.

"선생님..
저.. 고데기를 켜고 와서.. 잠깐 집에 다녀와도 될까요"


아마도 기술 수업 전이었던 거 같다. 나는 기술선생님에게 가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노총각의 그 선생님은 너무도 황당했던지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그것이 고데기 끄러 집에 간 첫날의 기억이다. 그 이후로도 고데기 때문에 집에 간 것이 몇번쯤. 친구에게 전화해서 고데기가 꺼져있는지 확인해달라고 한 것도 몇번 쯤... 물론 그 때마다 고데기는 늘 OFF.



병원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정말 단순한 사건이었다.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와 서브웨이에서 점심을 먹었던 적이 있다. 그날의 나는 다른 사무실에 가져다놓을 책자 여러권과 아이패드를 들고 있었다. 서브웨이 자리는 비좁았고, 나는 책상에 책자들을 내려놓았다. 와르르, 사선을 그리며 책들이 쏟아졌다. 다시 정렬하려고 노력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대충 수습하고 샌드위치를 와삭 깨물었다. 트레이 위에 카드가 올려져있었다.

"못 보던 카드네?"
"응 엄마카드인데, 실적 때문에 내가 좀 쓰고있어"


카드를 보면서 '지갑에 넣어놔야지'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지갑에 넣진 않은 거 같고.. 어디에 뒀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점심에 만난 이유는 친구의 옷 쇼핑 때문이었으므로(그 애의 옷이 고장났었다.) 이곳저곳 가게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친구는 극적으로 마지막 집에서의 성공적인 쇼핑을 마쳤다. 나믄 그 애를 버스 태워 회사로 다시 보냈다.


나 역시 사무실로 향했다. 가기 전에 회사분들에게 간식이라도 전해드릴까 하는 생각에 편의점에 들렀고, 지갑을 열었지만 애꿎은 명함뿐, 카드는 어디에도 없었다. 일단은 회사에 돌아가야 했었으니 사무실에 책자를 전해드리고 용무를 끝낸 뒤 다시 친구와 걸었던 경로를 그대로 따라걸었다. 어느 곳에서도 카드를 볼 수는 없었다. 카드 분실은 정말 잦은 일이었으므로 보통은 카드사에 분실신고를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카드였기 때문에 더 열심히 찾으러 다녔다. 엄마가 나를 꾸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벌써 세번째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전의 반응들을 토대로 보아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 지 유추해볼 수 있었다.

“또 재발급해서 쓰자~~~~”

내 생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의 자괴감은 깊었다. 그날 다시 나의 사무실로 돌아와서 나는 머리를 미친듯이 뽑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했다. 머리의 크나큰 땜통을... 아참. 그러고 보니 저번에 미용실갔을 때 미용사가 그런 말을 했었지.

"엉? 여기 탈모있어요? 머리가 비었네요"

아, 이렇게 살다가 쓰레기같은 마흔이 될 수는 없어. 마흔이 되어서도 고데기를 끄러 집에 돌아가고 물건 찾느라 시간을 보내는 삶을 살 수는 없다고.



—— 정신과에 대한 짧은 소회

2015년 어느 겨울의 심장내과. 24시간 심전도를 붙여놓고 결과를 기다리던 나는 혹시나 심장에 병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손가락을 쥐었다폈다 했다. 그당시의 나는 탈력발작(심장이 미친듯 뛰고 그 뒤에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온다. 10분 정도 회의실에서 엎드려 자다가 헉! 하는 느낌에 깨기 일쑤.)과 특정시간인 3시 경 미친듯한 심박수 상승으로 24시간 심전도 검사를 신청한 참이었다.


상세하게 심장이 뛰었던 시간, 정도 등을 체크한 표를 내밀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나의 심전도표와 체크표를 살피더니 이상없다는 말을 했다. 아.. 그럴리가 없는데. 생각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과의 진료에서는

"혹시 몰라서 피검사도 했는데, 아무 이상 없어요. 갑상선 수치도 그렇고.. "

"그럼 제가 이렇게 심장이 뛰는데.. 그 이유는 뭔가요? 제가 그때 심장뛰는 걸 느꼈는데 도표가 정상이라니 너무 이상해요.."

"그런건 본인의 마음을 다스려야죠.. 저희 병원에서는 해드릴 게 없습니다"

그때 나는 사실 심장외과를 다녀온 뒤 정신과를 갔었어야 했던 것이다. 너무 뒤늦게야 후회했다. 그때 병원에 가서 적합한 상담을 했어야했다. 퇴사만 하면 그만일줄 알았다. 실제로 퇴사하고 나니 딱딱하게 굳었던 손 끝의 굳은살도, 빠지기 시작했던 머리도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회복된 줄만 알았다. 생각하기 나름, 의지력을 가지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다.

인터스텔라의 책장 뒷편으로 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싶다.

"GO HOSPITAL.. "



P.s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던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9년, 아무래도 내가 이상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동네의 병원을 찾아갔다.

"저.. 아무래도 제가 ADHD인거 같아서요"

"음..(물끄러미 보더니) 아닌 거 같은데요?"

왜그랬을까 생각했는데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나중에 후술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