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몽타주

2018. 9. 9. 22:56

트위터에서 셀프인터뷰 한거 보고 너무 웃겨서 전자책으로 구매한 책.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글을 재밌게 써준 덕에 하루만에 훅훅 읽었다.

가훈을 ​아니면 말고로 지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뭐든지 멋대로 한번 저질러보는 거야. 그랬는데 분위기 썰렁해지면 그때 이 말을 쿨하게 중얼거려주는 거지.” 종팔이는 정말 좋아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본래 아이들이란 늘 ‘멋대로 한번 저질러보’ 고 싶어 미치는 인종이 아니던가. 하지만 역시 어른은 달랐다. 이튿날 종팔이는, 선생님께서 “세상에 뭐 이딴 가훈이 다 있냐?” 며 새걸 받아오든가 아니면 뭔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어오랬다고 전했다. 나는 한번 정한 가훈을 무를 수는 없다면서, 즉 이 일에만큼은 ‘아니면 말고’ 를 적용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덧붙였다. “현대인들은 자기 의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오만한 태도, 세상에는 의지만 가지고 이룰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닥쳐오는 좌절감을 어찌할 것이냐.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고 그래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땐 툭툭 털어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 경쟁만능의 사회에서 참으로 필요한 건 포기의 철학, 체념의 사상이 아니겠느냐. 이 아빠도 〈복수는 나의 것〉으로 네 친구의 아빠가 만든 영화를 능가하는 흥행 신기록을 세우고 싶었으나 끝내 그 20분의 1밖에 안되는 성적으로 끝마쳐야 했을 때 바로 그렇게 뇌까렸던 것이다. ‘아니면 말고…….’ ”

-알라딘 eBook <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의 몽타주) 중에서



​이건 내가 빵터졌던 부분ㅋㅋㅋㅋㅋㅋㅋ축구를 피하며 월드컵을 보낸 박찬욱 감독의 글 뒤에 적힌 각주같은 메시지.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

■■■ 글이 지면에 나가고 나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2002 한일 월드컵 사료편찬위원회의 멤버가 되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정몽준 회장께서 ‘이런 자도 하나쯤은 끼워줄 필요가 있다’ 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 담당자 아저씨가 어찌나 못살게 구는지 결국 내가 졌다. 여러 차례 회의에 나가야 했다. 저명인사 여러분이 토론하시는 동안 또다시 고독했다. 회의자료로 받은 서류에 숱한 낙서를 한 끝에 결국 두꺼운 책 두 권이 출판되었다. 그 책 크레딧에 보면 내 이름 정말 있다.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

-알라딘 eBook <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의 몽타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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