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ADHD의 슬픔 읽기

2021. 9. 17. 15:25

P. 68
혼자가 되면 미뤄 놓은 슬픔들이 말벌 떼처럼 날아들었다. 집에 오는 길, 도어 락 버튼을 누를 때마다 멈춰 서서 울었다.

-알라딘 eBook <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음) 중에서

이건 뭐.
내가 ADHD 환자라서 보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미친듯이 공감했던 부분.

P.106
어떤 사랑은 거리감에서 온다는 걸, 아니 거리감에서만 온다는 걸 독립으로 배운 셈이다.

-알라딘 eBook <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음) 중에서

대학교 다닐 때 [케빈은 열두살]이라는 오래된 미드를 다룬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디스턴스’에피소드를 매우 좋아했는데, 어쩌면 내게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리를 지키기가 너무 어려웠다. 상담을 받으면서 어려워했던 부분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요새 빠져있는 한 아이돌그룹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그게 되나, 적당히 좋아하는게.
그게 되나, 적당히 다가가는게.”



P.127
ADHD 진단 후, 너무 충격을 받아 내게 쏟아지는 타인의 피드백을 전부 수용하려 들었다. 평판 수집가처럼 굴면서 시분초 단위로 뭔가를 개선하려 했다. 하지만 나의 큰 실수는, ADHD가 아닌 모든 인류를 정상인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단지 ADHD가 아닐 뿐 다들 제각기 미쳐 있는 세상이다.

-알라딘 eBook <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음) 중에서

2018년 처음으로 ADHD 확진 판정을 받고 나는 오히려 주변의 응원(?)을 받았다.

너는 그냥 실수가 많을 뿐이지
그 병까지는 아니야.
그냥 덤벙대는 거 아냐?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근데 때로는 그런 말들이 나를 후벼팠다.
내가 병원을 가기고 마음을 먹은 것은 마흔 넘어서도 고데기를 끄러 집에가고 싶지않았기 때문이었고 1년에 같은 카드를 세네번씩 재발급받고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정말 이렇게 산다구? 공기놀이 1단에서 계속 돌을 떨어뜨리는 삶을 살아? TV가 여러대 켜진 채로 그것들이 무작위로 꺼졌다 켜졌다 하는 삶을 산단 말이야?
누구나 그렇게 실수는 하며 산다. 다만 나처럼 반복적이고 계속되지는 않을 뿐. 나는 오랜 기간 ADHD로 인해 우울과 강박이 동반된 사례였다.

다행히 약을 먹고 상담을 받은 덕분에 흩어진 공깃돌을 잡을 수 있게 되었고 TV들을 어케저케 잘 할 수 있게 됐다.

P.178
최초의 짝사랑이 자기 검열로 끝나서인지 살면서 다시는 두 번째 짝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다만 언제부턴가 모든 사랑을 멸시하기 시작했고, 모든 선을 낮은 허들처럼 넘어 다녔다. 조금씩 오래 참는 아이는 나중에 아무것도 못 참는 아이가 되기도 하나 보다. 다른 자매들보다 유독 엉망진창인 내 10대가 그 증명이었다.


-알라딘 eBook <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음) 중에서

사회화가 된 뒤의 나는, 무언가를 기다려야 할 때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로 기다린다. 하지만 혼자일 때의 나는 어떤 것도 기다려주지 못한다. 식단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지 않을 때면 한 장에 다 담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계속 먹으며 준비를 한다. 참을 수 없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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