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배터리충전자의 김제 전주 군산여행 02

2022. 5. 10. 05:42독립시선일기


5시49분에 밥먹으러 가기
아니.. 절밥이 너무 맛있었다. 사과공주의 취향을 저격한 사과와 마 파프리카 그리고 두부부침과 토마토바질.. 와우..

같이 템플스테이 하시던 분이
“이렇게 일찍 아침 처음 먹어보죠?” 라고 물어보셨는데 나는 주간출근을 5시에 하는 사람이고 석대는 광기의 미라클모닝을 하는 사람이라 여러번 있었지만.. 그냥 말이 길어질거 같아 아^^;;네 하고 말았다. 셀털을 너무 하게 되면.. 서로 귀찮아지니까..

먹고 주변 산책을 했다. 하면서 뱀도 봤다. 죽은건지..

암튼 좋은 곳이었다.
절을 산책하면서 지장보살을 모신 절을 봤는데 지옥에 있는 자를 성불시키기 위해 직접 지옥으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상 성불을 포기한 존재라고..

찾아보니까 관세음보살은 현실세상의 행복을 빌어주는 존재이고 지장보살은 내세의 성불을 도와주는 존재, 현실에 있는 사람이 지장보살에게 기도를 하는 때는 두가지겠다.

내가 지옥에 갈거 같거나
혹은 이미 떠난 사람이 걱정되거나.


절에 와서 보살님 옷을 입고 초파일 연등을 보니 소설이 하나 생각났다. 김연수 작가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소설집 중 [노란연등 높이 내걸고]라는 단편이 있다. 소설 주인공 예정은 지장회에 가입하고자 하나 그를 거절당한다. 이유는 그녀가 젊기 때문이다. 늙은 여인만 받아주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젊다면 지옥에 갈 죄를 갚으며 살아가라는 이유 때문이겠지

그런 공양주 보살 생각에 지장회란 자신처럼 지은 죄가 무던하게 많아 지장보살에 기댈 수밖에 없는 늙은 영혼들에게나 어울리는 곳이었다. 공양주 보살은 예정에게 춘향이열무처럼 푸릇푸릇한 처자는 지장회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고 단호하게 못박았다. 사실 지장회에는 환갑을 넘긴 여신도만 입회할 수 있었다

-알라딘 eBook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개정판)> (김연수 지음) 중에서



식후 티타임

식후에는 티타임을 가졌다. 저 찻주전자가 참 예뻤는데.. 살까, 하다가 또 안 쓰고 냅둘거 같아서 말았다. 지금 있는 프레스 기계나 잘 쓰고 잘 닦아놔야지.

그리고 아주 잠깐의 짧은 잠을 끝으로 템플스테이를 떠날 준비를 했다. 석대의 치과를 가려면 너무 늦어지면 안됐으니까.

주말을 맞이해서 금산사 앞에는 벌써부터 상인들이 나와있었다. 옥수수, 옥수수 노래를 불렀는데 마침 옥수수를 파는 분이 계셨다. 추억의 운동회 아이스크림도 파시기에 그것도 사먹었다. 초록색 보라색 맛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아침에 당충전하기 너무 좋았다. 옥수수는 3개 5천원.. 3개까진 필요없었는데 그냥 샀다. 두개를 남겨와서는 오늘 아침까지 먹었다. 먐냠 옥수수조아



전주 도착
전주는 대학생때 많이 와본 곳이다. 영화제를 매년 했으니까. 마침 이 즈음도 영화제 즈음이었는데 객사쪽을 안 지나서 그런지 어떤 분위기였는지 모르겠다. 근데 군산도 사람이 많았을 정도였으니 전주는 더 심했을거라고 생각한다. 암튼, 전주는 성인 이후 최초의 국내여행지였던 거 같다. 신입생때 가서.. 석대랑 그곳에서부터 오해를 풀고 좀 친해졌었는데. 암튼 그때 교보문고해서 대학동기랑 이런저런 지적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랬었다. 그날 이후로 12년이 지났는데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거같다.

이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게 2017년에 윈윈수산이라는 횟집을 갔던 적이 있다.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서 오늘 석대가 그 근처 회사를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윈윈을 가자하니 문을 닫았댄다. 아, 이럴 수가. 근데 정말 2017년은 5년 전의 일이니 그럴만도 하다. 내 기억상 그때는 별로 멀지 않은 과거인데 이런 순간들을 마주할때마다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5년 뒤에야 뒤늦은 후폭풍이 왔음을 깨달은 나는.. 그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암튼 5년만에 처음으로 프사가 너무 궁금해서 훔쳐봤는데 보면 안됐다. 왜 구남친의 SNS를 염탐하지 말라고 하는지 알겠다. 잔상이 깊어진다. 궁금한 일이 생기더라도 다시는 엿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느 과거의 시점에 갇혀있었다는 걸, 피하고 있던 어떤 걸 마주한 순간 깨닫게 되었다.




석대가 치과치료를 받는 동안 [히어]라는 카페에서 머물고 있기로 했는데 이런 변수발생. 문을 닫았다. 어디있을까, 하다가 왠지 몸도 찌뿌둥하고 아침에 안 씻고 나와서 찝찝하고 해서… 터미널 앞 아리울사우나를 가기로 했다.

정말 옛스러운 분위기의 목욕탕이었다. 가운데에는 평상이 있고, 세신사인지 사장님인지 같은 분이 원피스를 입고 앉아계셨다. 아주머니들은 알몸으로 인사를 건네며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옷을 벗고 물을 맞으니.. 샴푸가 없다. 빌려서 써볼까 싶어 샴푸를 빌려달라하니 언제 갚게? 하는 장난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샴푸를 얻어쓰고 몸을 닦은뒤 뜨거운 탕에 들어가니 피곤이 풀렸다. 그리고 딱 나와서 핸드폰을 보니, 치과진료가 모두 끝났다는 석대의 카톡이 와있었다.


전주터미널 앞 인솔커피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원샷하고 전주에서 군산가는 버스를 탔다. 군산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
군산이 이렇게 인기많은 도시였다니
호텔에 짐을 풀어놓고 밥을 먹으러 나섰다. 일단은 사진을 찍으러 도도하라에 갔다. 제법 예쁘게 찍어주시더군. 석대와 나는 이번에 지옥에서온 GL컨셉이었는데(뼈테로임) 암튼 둘이서 사진 찍으니까 되게 웃겼다. 마지막은 나름 친한척 하며 끌어안고 사진찍었는데 정말로 지옥에서 온.. 응.. 그랬다. 난 남자가 좋다. (갑자기.?)
초원사진관은 사람이 너무 많았고 이성당도 많았다. 아니 이렇개 사람이 많아.? 하고 커피벨트를 갔는데 뭔가 정신없어보이고.. 옆자리 커플은 왠지 싸운 느낌이고.. 또 옆에서는 점을 보는건지.. 암튼 어수선해서 커피벨트는 내일 가기로 하고 밥을 먹게 지린성을 가자, 하며 나왔다. 네시면 문을 닫고 재료소진시 영업 끝이래서 사람이 많은지 전화해봤더니 흔쾌히 오라고 하셨다. 오, 사람이 없나보군. 하며 갔는데 난 사람들이 짜장면 먹으려고 그렇게 줄을 길게 서 있는 모습을 처음봤다. 근처에 복성루가 있대서 복성루 갔더니 거기도 난리났다. 그래서 취향반점옆에 있는 영빈각이라는 곳을 갔다. 짬뽕짜장탕수육으로 시킬까 하다가 사천짜장이 맛있다그래서..짜장두개를 시켰다. 짬뽕국물이 안 나온대서 걱정했는데 사천짜장이 제법 볶음짬뽕같아서 맛있었다. 조합이 매우 좋았다. 탕수육은 푹 젖어서 나와서 바삭하진 않은데 나름 괜찮았다.


먹고 나와서 또 걸었다. 걷고 걷기.. 와서 낮잠 한숨 때렸다. 소화가 안되는 거 같았다. 자고 일어나니 뭔가 더부룩한 느낌.. 일어나서 편의점에서 베아제에 까스활명수를 사다먹었다. 몸도 안 좋고 컨디션도 영 그래서 오늘 일정을 이걸로 끝내고 싶은 생각이었는데 왠지 후회할거 같고 나 없이 석대가 너무 심심할거 같고 해서 다시 길을 나섰다. 위스키바 해무로 가는 길. 가기 전 바닷가도 들렀다.


여기가 그 유명한 진포대첩의 진포구나
고려시대에는 이곳에서 왜구를 토벌했다면 일제시대에는 이곳에서 수탈을 당했다. 군산에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아픔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남겨두는 게 맞다고 보지만, 이곳에서 일본어 간판을 걸고 한국어로는 뭔 뜻인지도 모를 그런 것들을 파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어로 된 튀김덮밥 집에 줄선 모습이 기억난다. 저 일본어가 무슨 뜻인데? 한국에서 장사하면서 저따위로 간판을 써놔? 싶은 마음.
암튼 왜색이 너무 짙은 건 별로야.


해무 도착.
러스티네일과 짐벅? 으로 입을 축였다. 러스티네일은 도수 35도의 위스키칵테일이었다. 해무로 출발하기 전에 군산시민의 블로그에서 본 메뉴라서 1도 모르지만 시키기로 했다. 오렌지향이 좋았다. 먹고나니 취기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두번째잔은 옆사람들 시키는가 구경하다가 헨드릭스진토닉을 시키기로 했다.
+짤막한 상식..
그냥 진토닉은 모르지만 헨드릭스 진토닉은 오이와 장미에센스가 들어가서 그 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오이를 넣는다고 한다. 해무 사장님은 오이를 너무 싫어함에도 오이를 넣는 이유가 있었다고 함..(오..)


석대는 바질크러쉬를 시켰다. 크리스마스테마음료같기도 하고 여름이 잔뜩 담겨있었다.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토치질을 했는데 손님상 대접용으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 또 다시 손님상을 대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쟁족은 쟁반족발 야곱은 야채곱창
어딜 가볼까 하다가 순도리 곱창을 가니마니 하고 있었는데 아까 낮에 돌아다닐 때 봤던 쟁족을 지나쳤다. 나는 당연히 쟁반족발이라고 생각했는데 김구선생님이 1949년에 독립운동을 했던 동지들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머리가 되기 위해 싸우기보다(쟁두) 다리가 되기 위해 싸우자는 말(쟁족). 대가리싸움에서 질려버린 김구선생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암튼 좋은 말을 쟁반족발쯤으로 생각하다니, 그럼 이곳은 뭘 파는 곳일까? 하며 야외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아저씨들의 테이블을 보았다. 미니족발을 먹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 뭐가 맛있어요?“
석대가 마치 아는 사이인양 그 아저씨한테 말을 걸었다. 당황한듯 아저씨가
“이거 미니족발도 맛있고요.” 했다.

밤의 군산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역시 쟁족이 짱이겠다 싶어서 들어갔다. 주인아저씨가 안 보였다. 대신 맥주병을 쌓아놓고 얼굴이 벌개지도록 술을 마시던 아저씨가 나와 우리를 반겼다. 그가 바로 쟁족의 주인이었다.

배는 부른거 같고 암튼 가자미포를 시켜봤다. 시큼시큼한 홍어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너무 맛있었지만 석대는 홍어를 안 먹는다그랬는데 그래도 석대가 잘 먹는 눈치였다. 쟁족 아저씨는 7080음악을 틀었다. 나는 슬슬 따라불렀다. 석대가 대체 이 노래를 어떻게 아느냐며 물어봤다. 그냥 많이 들어서.. 제목은 기억 안나도 노래는 안다고 답해줬다.

가자미포의 소스가 너무 천재적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순도리곱창을 갔는데 열두시까지 한다고 하기에 포장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아 물론 편의점도 들렀다. 햇반과 참치마요김밥 컵누들 등등.. 나 소화제 먹었던 사람 맞지. 취객의 헛소리타임이 시작되자 석대가 적당히 끊어주고 자자고 했다. 유난히 길었던 하루가 끝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