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9. 14:14ㆍ140자이기엔 아까운
#석대가 보내준 시 한 편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석대가 시를 보내줬다. 마음이 울컥해졌다. 사랑한 만큼 마음껏 그리워하고 보내줘야지 라는 옥잠선배의 말에 그래, 그래야지. 생각했다. 근데 참 어렵다. 사랑과 그리움은 성질이 달라서. 사랑은 은은하게 지속되기 어렵지만 그리움은 오랫동안 끌고 간다. 이렇게까지 사랑했는지 몰랐던 것들이 떠나버렸을 때 느끼는 그리움은 사람을 더더욱 괴롭게 한다. 사람이든, 그 순간의 기억이든. 초록의 안에 있을 땐 초록이 초록인지 모른다. 늘 떠나고나서야 그것이 초록이었음을, 햇빛에 반사되면 가끔은 투명할 정도로 아름다운 색깔이었음을 모른다. 그래서 그리움은 아쉬움과 뒤섞여 오래가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 감정은 보내주기가 참 힘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적막
시의 가장 마지막 문장인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처음에 박혔지만 읽다보니 첫 문장인 ‘적막의 포로’ 가 떠올랐다. 적막의 포로가 무슨 뜻일까, 적막을 견디지 못해 아무말 하던 순간을 벗어던지고 겸허히 적막을 받아들이게 되는 그 순간을 말하는 건가, 했더니 옥잠 선배가 그런말을 했다. 시시콜콜한 감정들을 말하기 보다는 삼키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아닐까, 하고. 어쩔 수 없이 적막을 선택하게 되는 그런 순간. 그렇다 포로라함은 그런 것이겠지. 어쩔 수 없이 적막을 따르게 되는 시기. 가을이 되어간다는 건 그런게 아닐까 싶다.

올해의 여름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유니폼을 입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공문이 나왔다. 이번주부터 춘추복 착용을 혼용하겠다는 것. 그 말에 우리 회사에서 공식적인 가을의 시작은 이번주였구나 생각했다. 나의 여름은 공식적으로 향이가 귀국하면서 끝났다. 7월 말에 떠났는데 8월은 내가 아무 약속을 잡지 않아서 집 아니면 회사의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나에게 8월은 삭제된 계절이다.

아무튼 야간근무할 때 울리던 매미소리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던 그 감촉도, 새벽에 출근할 때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를 또 다시 그리워하는 순간이 오겠지.

암튼 올가을의 소원은,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옛날의 즐거운 기억에 함몰되지않고 현재의 행복을 잊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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