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이별의 계절_ 아니, 이사의 계절

2021. 11. 25. 16:49독립시선일기

#필연적으로 추울 때 떠나고 마는

재생되지 않는 이미지임.

밥냄새가 나는 집
밥해놓고 거실불을 껐는데 순간 할머니네서 명절 전날 잠들던 날이 떠올랐다. 밥냄새와 캄캄한 방을 보면서 방이 아니라 집으로서 잘 꾸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한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은 겨울이기 때문인 것 같다. 독거생활이 언젠간 다시 시작되려나.

이사 전 한달은 내집이 아닌 달
28일, 내내 고민을 하다가 집주인에게 통보를 했다.
“집을 나가려고 해요.
맘같아서는 더 살고 싶은데요.
저희 부모님이 이사를 가셔서 가는 김에
저도 들어가려구요.” 하는 말에
“네, 집 내놓을게요.”

하자마자 부동산에서 전화가 미친듯이 걸려왔다. 백신을 맞고나서 천천히 정리하려 했건만 부동산에서 왜 그리 사진은 찍어가는지, 왜 그리 보러와서 다들 오~ 넓네요 만 하고 가는지. 어제는 사실 약간 짜증이 났다. 근데 한가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은 계속해서 누구에게 보여져야 하는 집을 꾸리다보니 집이 깨끗하게 유지된다는 점. 하나는 어디에 정리해놨는데 그게 어디있는지 못 찾겠다는 것이다. 아…! 힘들다..

여름에는 뜨거워요, 그러면 겨울은요?


겨울이 쓸쓸한 이유
계절을 안 타나, 했었는데 올해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즈음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들어왔었다. 어릴 때부터 겨울은 늘 이별의 계절이었다. 익숙한 것들이 떠나가고 낯선 것들이 시작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계절. 어릴 때 나는 이 감정을 투명한 계곡 물을 앞에 두고 발을 담그기 전이라고 표현했었다. 물이 시원하면서도 어떤 돌들은 모나있어 발을 아프게도 하겠지. 하는 그런 감정들.


덮어놓은 것들을 마주했을 때의 좌절감
간밤에는 잠을 설쳤다. 평생 나와서 살 줄 알고 계약했던 인터넷, 전화..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집회선까지 동시 재약정.. 그래서 해지하면 44만원의 위약금이 든다고 했다. TV는 왜 했지. 본지도 오래됐는데. TV를 사면서 티비장겸 수납장 가구 하나를 더 들였지. 인터넷만 할걸, 하며 갖은 후회들.. 1년도 안 살았는데 잔뜩 쌓여있는 살림들, 의욕적으로 사두고 본격적으로 펴보지 못한 책들. 당장 쌓인 짐은 어떻게 정리하지, 지금 엄마집에 있는 짐들도 버리든 뭐하든 해야할텐데 어쩌지. 생각들이 끊이지 않았다. 덮어놓고 살던 것들을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는 혼란, 어젯밤의 나의 감정이었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
회사에서 청약 관련 얘기하다가 그런 말을 했다.
“제 나이 서른 하나에 이런 얘기하는게 쑥스럽지만요. 어른으로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네요..”
이사를 가려니 가스도 끊어야 될 것이고, 전기도 명의를 바꿔야 하는데다 전출신고 전입신고.. 인터넷은 해지하려면 기사가 방문해야 할 것이고.. 언제 방문하라고 하지? 이삿짐 아저씨에게는 얼마를 결제해야 할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거창한 문제를 짊어지고 산다는 게 아니다. 사소한 문제들을 덮어놓지 않고 해결해내어 나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2016년 초반에 들어놓은 방카슈랑스 보험 두개를 가지고 골머리를 앓고 있고, 10년만 지나면 손해보더라도 목돈이 될줄 알았더니만 각각 34년 86년에 100프로가 되어 개시가 된다는 말.. (그래도 희망적인 건 납입은 10년까지인 듯 하다..) 남들은 어린날 저축해놓은 것들로 살아간다는데 나는 저질러 놓은 과오(?)를 회복하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돈을 더 벌어야 할까. 앞을 내다보지 않아서, 때로는 귀찮아서 눈감고 살다가 얼마나 더 손해를 보고 살까.. 걱정이 된다. 그나저나 집이나 빨리 나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