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5. 08:48ㆍ독립시선일기
#3. 열심히 사는 게 낯설어요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고 물으신다면
난 어릴 때부터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뭔가 최선을 다해본 적도 없었고 노력없이 우수한 성적을 내왔기 때문에 노력하는 걸 우습게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운이 좋지도 노력을 안해도될만큼 머리가 좋지도 않아서 금세 바닥났다.)
초딩 때 학원에서 반 배정 시험을 봤었다. 정말 열심히 하는 애가 있었는네 나보다 낮은 반에 가서 걜 비웃었던 경험이 있다. 아마 지금쯤 나보다 훨씬 잘살고 있겠지
여튼 그래서 뭔가 최선을 다해서 한 기억이 없다. 뭔가를 만드는 것도 늘 시켜서 했지 자발적으로 한적은 없었고.
(오죽하면 얼마전 올림픽 환영단에 갔을 때 머리띠를 직접 만들어가자 고딩때 친구가
“너 손재주 없잖어 무슨일이야”
했었으니까
무슨 일은 정말로 있었다
최근에 무언가에 몰두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하고 싶었던 독서몰두나 배움에 대한 몰두가 아니라 현타가 한바가지씩 쏟아졌었지만, 드라마하나 진득하게 보지못했던 내가 비밀의숲-품위있는그녀-김전일을 탐독하고 슬라임에 열중하는 걸 보면 변화가 있긴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이 나를 바뀌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에 대한 자아와 취향이 잡힌 상태에서 개인의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집을 꾸밀 때도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로 채워나갔다.
얼마전 대리님과 얘기하다가 청소년기의 뇌세포활동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그때 뇌에서 호르몬과 등등이 폭발해 감정이 복잡하고 그와 더불어 창작능력까지 가장 좋을 때라고 했다. 난 그 시기를 취향없이 보냈다. 자수를 하고 싶었는데 공부만 하라고했고 만화책은 숨어서 읽다가, 그마저도 그만뒀다. 덕후같은 건 멋지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서
예쁜 것들도 안 봤다. 관심이 없는 줄만 알았다.
참 정성이다 너도. 뭘 그렇게까지하니를 듣고 자라면
퍽하면 부모탓 하는 것도 싫지만, 우리 부모님은 매번 그랬다. 내가 살을 빼겠다고 비디오를 볼 때도, 한번 먹는 밥 맛있고 예쁘게 먹고싶어서 꾸며올릴 때도, 더 옛날로 가 이지훈을 좋아했던 나를 맨날 놀릴 때에도. 그게 부끄러워할 게 아닌데 난 늘 부끄러웠다. 열성을 다해 좋아하고 그에 대한 행동을 하면 늘 놀리거나 빈정댔으므로, 나는 그것이 왠지 잘못된 것인줄 알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라고보니 우리 부모님은 A를 표현하면 B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새로 이사갈 집의 벽지를 뜯어냈을 때
“직업을 바꿔라 바꿔! 도배업자 해 그냥”
했던 말이 ‘딸내미가 다 커서 이런 것도 하네. 근데 좀만 살건데 왜 그렇게까지 하냐’의 표현일줄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살짝 알게 됐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그렇게 표현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당신이 고생해서 마음이 아프다, “
라고 말을 해야지, 혼내고 호통치기보다는 고생을 덜 했으면 좋겠으니 대충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그런 부모님의 딸인 것 같다.
엄마가 밥사주러 왔던 날 마신 카푸치노.
별안간 카페에 가서 앉아있다 가자기에
그날은 기분이 좋아 재잘재잘했던 기억
여튼 재건축 사업 고시안내장이 집으로 날아들면서, 새삼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한 현타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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