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시선일기(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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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조차도 상수가 아닌 삶에서 변수들을 바라보는 날
코로나 격리해제 하루 전날. 증상도 없고 답답해져서 방격리를 끝내고 집격리로 확장시켰다. 오랜만에 방이 아닌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아빠는 오늘도 종편 뉴스를 틀어놓고 대통령을 욕하는 앵커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이어폰을 낄까, 싶었다. 아빠는 '중년 남성'이 되었다. 트렌치코트를 멋지게 입고, 술보다는 커피를 즐기는 맛을 알며, 카페 직원에게도 낮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슬프게도.. 등산복을 즐겨입으며 1호선에 앉아있을 법한.. 그런 아저씨가 되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개저씨'로 늙어버렸다는 얘기다. 이달 초 언니가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에 걸리기 전날 언니는 술을 마시고 열두시가 넘어서 들어왔는데 천둥처럼 야단을 쳤다. 결국 요지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22.03.27 -
다시 또 집으로 - 1년 간의 혼자살이를 마치고
12월은 내게 너무 가혹한 달이었다. 몸이 닳아간다는 게 느껴지던 한 달. 이것저것 정리할 것 투성이였고 1. 월초. 부동산러시.. 집보러 오느라 내 집이 내집같지 않았다. 2. 백신 3차를 회사휴가중에 쓰려고 했더니 근무인원 때문에 짤림 3. 교대근무 후 연속 교육 4. 늘어가는 식욕으로 술과 음식으로 가득찬 하루들(이건 나 스스로가 불러온 재앙인듯.) 아무튼 지겹디지겨운 12월이 끝나가던 29일, 나는 이사를 했다. 다행히 냉장고와 세탁기는 이후에 들어올 세입자에게 중고로 12만원에 판매했다. 이사비용이 조금 깎이지 않을까, 했는데 짐이 생각보다 많았다. 결국 만원 네고받고 끝. 대체 한 해만 살았는데 짐이 왜 이렇게 많아진건지. 늘 가볍게 살고 싶은데 언제나 짐을 가득 이고 산다. 오는 길에 용달차..
2022.01.04 -
이사 하루 전-1년의 흔적
#1년밖에 안 살았는데 짐이 왜 이리 많죠 공병들로 헤아려보는 1년의 시간 고작 1년인데 짐이 참 많다. 분명 미니멀리스트로 살겠다고 했던 거 같은데 주방집기며 이래저래 많아졌다. 다이어트 한답시고 밥을 직접 해먹었던 탓이다. 1년간 집에서 먹은 술 공병들을 내다버렸다. 근데 집에서는 암만 먹어도 바깥에서 먹는 술맛이 안난다. 취할만큼 먹지도 않게되고. 최근엔 c선배와 그의 애인이 다녀간 밤이 재미있었다. 혼술은 맥주로만 한다. 아빠와 사이가 한창 안 좋았던 2018년에 혼술로 소주를 마시는 일이 잦아졌다. 그 이후 알코올때문은 아니지만 암튼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술을 끊었고 혼술로 절대 소주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소주는 여러사람과 함께 기울이는 거라고. 마음먹기까지가 힘든 것들 가스와 전기 인터..
2021.12.28 -
겨울은 이별의 계절_ 아니, 이사의 계절
#필연적으로 추울 때 떠나고 마는 밥냄새가 나는 집 밥해놓고 거실불을 껐는데 순간 할머니네서 명절 전날 잠들던 날이 떠올랐다. 밥냄새와 캄캄한 방을 보면서 방이 아니라 집으로서 잘 꾸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한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은 겨울이기 때문인 것 같다. 독거생활이 언젠간 다시 시작되려나. 이사 전 한달은 내집이 아닌 달 28일, 내내 고민을 하다가 집주인에게 통보를 했다. “집을 나가려고 해요. 맘같아서는 더 살고 싶은데요. 저희 부모님이 이사를 가셔서 가는 김에 저도 들어가려구요.” 하는 말에 “네, 집 내놓을게요.” 하자마자 부동산에서 전화가 미친듯이 걸려왔다. 백신을 맞고나서 천천히 정리하려 했건만 부동산에서 왜 그리 사진은 찍어가는지, 왜 그리 보러와서..
2021.11.25 -
나는 내가 주인인 들개야. 주인따윈 없어도 돼
#연애하지않아도 괜찮아요 0으로 수렴하는 연애방정식 마지막 연애가 2018년. 그 이후로 자의든 타의든 연애를 안한지 꽤 되었다. 운좋게도 나를 좋다고 해주는 이들이 몇 있어서 고민해볼 시간도 있었으나 사귀기 전부터 이미 글러먹은 부분들을 봐서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100프로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느냐 다들 묻지만 내가 허용할 수 없는 것들이 1프로라도 있으면 0프로로 수렴하는 독특한 방정식을 가지고 있기에 아직도 연애가 어렵기만 하다. 대충 눈치없는 척 철벽도 쳐보고 이래저래 살아왔건만 최근 아주 골때리는 사태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왕따라서 잘해주는 줄 팀이 바뀌고 한달을 다른 곳에 파견되어 일하다 왔다. 다시 돌아온 일터에서 나는 마치 서먹한 전학생처럼 어찌할 바 몰랐다. 신입이었고 남초회..
2021.10.30 -
꿈에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면
#간밤에 꾼 흉흉한 꿈 꿈의 뿌리를 따라가기 혼자 살아가기로 맘먹은 뒤 극복해야 하는 공포들이 있다. 얼마 전에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뒤로 넘어져버렸다. 가까스로 목을 가누려고 한 덕에 화장실 턱에 목이 부딪히지는 않았다. 다만 허리로 모든 충격을 받아서 아주 잠시 억- 하고 숨을 멈추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몸을 추스리고 앉아서 나는 막연한 공포를 느꼈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집에서 혼자 기절했다가 혼자 일어났을 수도 있겠구나, 아니면 혼자서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겠구나. 특히 6일 간의 연휴 초반이었기에 회사에서도 날 찾지 않았을테고. 아찔한 상상들이 이어졌다. 친하게 지내는 학교선배와 한 약속이 있다. 사흘간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으로..
2021.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