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이기엔 아까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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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소원,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석대가 보내준 시 한 편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석대가 시를 보내줬다. 마음이 울컥해졌다. 사랑한 만큼 마음껏 그리워하고 보내줘야지 라는 옥잠선배의 말에 그래, 그래야지. 생각했다. 근데 참 어렵다. 사랑과 그리움은 성질이 달라서. 사랑은 은은하게 지속되기 어렵지만 그리움은 오랫동안 끌고 간다. 이렇게까지 사랑했는지 몰랐던 것들이 떠나버렸을 때 느끼는 그리움은 사람을 더더욱 괴롭게 한다. 사람이든, 그 순간의 기억이든. 초록의 안에 있을 땐 초록이 초록인지 모른다. 늘 떠나고나서야 그것이 초록이었음을, 햇빛에 반사되면 가끔은 투명할 정도로 아름다운 색깔이었음을 모른다. 그래서 그리움은 아쉬움과 뒤섞여 오래가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 감정은 보내주기가 참 힘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적..
2021.09.09 -
머리를 하러 갔다가 또 다른 나를 만났다.
#단발로 산다는 것은 한달에 한번씩 미용실을 가야한다는 것. 박규영에서 정준하 과장까지 성숙한 여인의 느낌을 내고 싶어서 6월 초, 머리를 잘랐었다. 늘 칼단발로 자르다가 숏단발로 잘랐는데 나름 반응이 좋았다. 머리를 자른 덕인지 ‘어플로 얼굴을 줄인 거 같다’는 말도 들었으니깐 ^^v 암튼 어떤 머리였던고 하니 이 분야의 대표주자 박규영씨 머리였다. 물론 얼굴은 이렇지 않았다. 그리고 미용사에게 보여주기 머쓱해서 차마 내밀지도 못했다. 그냥 내 마음속으로만.. 박규영씨 머리였다. 그런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머리가 자라니 바가지머리가 되어버렸다. 무한상사의 정과장 느낌. 게다가 요새는 마스크를 귀에 걸어놓기 때문에 머리를 귀에 꽂기도 어렵다. 내 귀가 말랑말랑하기 때문인걸까. 아무튼 계속 정과장이 될 수..
2021.07.07 -
할머니는 여름휴가를 떠나셨다 202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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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서고 더불어 살자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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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가는 여름을 봐도 눈물나지 않아요. 힘들어하면서도 다 해내는 어른이 되었거든.
#가는 여름이 서러워 울었던 적이 있다면 청승도 그런 청승이 따로없지. 2013년의 나는 어딘가 이상했던 게 분명하다. 6월의 언젠가 산책로를 걸어오는 길에 여름이 가는 게 너무 슬퍼서 앉아 울었던 적이 있다. 여튼 그때 기억이 또렷이 나지 않는다. 한가지 분명한 건 그때 책상아래로 들어가 울던 날이 많았고 잠을 못이룬 날도 많았다. 중간에 딱 하나 기억나는 것은 흑백으로 된 꿈을 꾸다가 '내가 죽었구나' 생각했을 때 정말정말 맛있는 복숭아를 먹으면서 맛이 떠오르지 않아서 '진짜 죽었구나' 했다. (그 즈음의 나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나의 게으름에 빠져서 넘실거렸다. 그 때문인지 2015년도에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사장이 내게 '넌 성취경험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길. 존나 정답이었다. 아..
2018.09.09 -
머슴시선일기
감기걸려서 코맹맹이 소리나는데 오늘 반팔입고 차에 가득한 짐 옮길동안 아무도 안 도와줬으면서 언니 책상산 건 어떻게 가져가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이 집 머슴인가 싶다. 아빠가 어느날 부터 집안일에 관심을 끊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나 혼자 전등을 갈고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이고 무거운 쌀포대 등을 옮겼다. 좋아서 했던 일은 아니었고 할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 어느날부터 그게 당연해졌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골골거리며 누워있을 때 달랑무가 뭐라고. 달랑무 샀으니 가지러 오라는 말에 나는 또 엄마혼자 들고 올게 마음이 약해져서 가지고 오다가 봉지를 왈칵 쏟았다. 오는 길에 엄마랑은 따로왔다. 울고 싶었다. 오늘은 반팔차림으로 차에 가득한 짐들을 옮겼다. 수없이 많은 내 짐들을 저녁에 틈틈이 옮겼는데 엄마는..
2017.11.25